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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3 18:06
구의역에서 맞닥뜨린 97년생 '세월호 세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698  

구의역에서 맞닥뜨린 97년생 '세월호 세대'

세월호 참사 희생자였던 단원고등학생들도 구의역 스크린도어 희생자도 97년생
사회 병폐와 부조리 답습 고리 끊어내야

  • 김인경 기자
  • 2016-06-03 17:32:32    
1997년 한국은 파산 직전에 처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95억 달러,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각각 70억 달러와 37억 달러를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다.

기업의 줄도산과 구조조정으로 많은 가장들이 실직했고 단란했던 가정이 한 순간에 붕괴되기도 했다.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했고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에 동참했다. 집안의 금이란 금은 탈탈 털어 국가의 재건에 보탰다. 국민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국가가 잘 되면 나도 잘 되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97년생은, 그런 시절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6년, 97년생은 한국 사회의 온갖 구조적 병폐를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세대로 각인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대다수는 1997년생인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로, 이후 97년생은 자연스럽게 ‘세월호 세대’라 불렸다. 최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희생자도 97년생, 세월호 세대였다.

◇ ‘잊지 않겠다는 말’은 지켰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진도 해역의 모습./출처=구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거슬러 올라가자. 청해진해운은 2010년 오하마나호의 선령이 다하자 선령이 21년 된 세월호를 일본에서 들여왔다. 인천항만청 전현직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객실과 화물적재 공간을 무리하게 개조, 증축했다. 상습적인 화물 과적도 확인됐다. 이 같은 과적 화물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복원력을 잃은 핵심원인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객의 안전이 아니라 ‘돈’이었다. 사고 당시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초기 신고를 접수하고 구조를 위해 출동하는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구조 과정에도 숱한 의문이 제기됐다. 해수부 출신 퇴직관료들이 해양안전이나 운항을 담당하는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가면서 유착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은 아직까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법인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고, 대표이사만 징역 7년형을 받았다. 선원은 제외한 채 선장만 살인죄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목표해경이나, 서해청장, 경청장은 애초부터 기소되지 않았다.

구의역 사고는 ‘세월호 참사’와 겹쳐 보인다./연합뉴스
그로부터 2년 후 2016년 5월. 구의역 사고는 ‘세월호의 재연’이었다.

수차례 스크린도어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최소한의 안전지침인 ‘2인 1조’ 근무 규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은 마련되지 않았다. 구의역 직원들은 어떤 작업을 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김씨에게 스크린도어 열쇠를 건넸다. 2인1조 안전 수칙을 준수하는지 감시하지도 않았다. 김씨가 일했던 은성PSD는 서울메트로가 직원들의 정년 보장을 위해 설립한 회사로, 직원의 70% 이상이 정년퇴직을 앞둔 서울메트로 간부들이었고 그나마 자격증도 갖추지 못한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정비공 사망사고 당시 서울메트로 측은 “심야에 점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를 어기고 주간에 작업했다”며 사망한 정비공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수사 중’이다. 이번 구의역 사고 직후, 서울메트로 측은 허술한 안전망 속에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김씨에게 ‘보고를 안 하고 작업했다’라고 책임을 전가했다가 비난이 일자 이를 번복했다.

◇ 응답하라 1997, 하지만 응답할 수 없는 97년생

지난해 15~29세 청년 5명 중 3명(64%)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에 진출했다. 일반 계약직 비정규직은 물론 사내 하청·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이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일이다. 문제는 비정규직 고용 증가 폭에 비해 일자리 처우 개선이 더디다는 점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따르면 매년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는 감소하고 있지만, 중대재해 사망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와 같은 비정규직의 사망 비율은 2012년 37.7%, 2013년 38.4%, 2014년 38.6%, 2015년 6월 현재 40.2%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민주노총 노동안전국 관계자는 “중대재해 약 40%가 하청 노동자와 관련된 사고다. 실제로 사고조사나 산재예방에 있어 노동자들은 보상받을 수 있지만, 하청노동자는 여기서도 예외”라고 말했다. 

◇ 구의역 희생자에게 전하는 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구의역 승강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연합뉴스
지난 2일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김광배씨가 구의역 희생자 김씨의 분향소를 찾았다. 교복 차림으로 밝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앞에 절을 올린 두 사람은 김씨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우리 애도 그때(세월호 참사 당시) 수학여행을 갔다”며 “(세월호 진상규명에) 아무런 도움이 못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우리 아이들 위해서 빨리 진상규명을 했어야 하는데 너무 부족했다”며 김군 부모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구의역 승강장에는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SNS상의 ‘댓글’처럼 형형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이라 분석했다.

추모 포스트잇에는 이런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청년은 쓰다 버리는 부품이 아니다

-19세, 컵라면, 두 단어에 울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곳에서 못 이루신 꿈, 하늘에서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19살 청년입니다. 당신의 잘못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세월호 아이가 또 죽었군요. 꽃이 되지도 못하고 이렇게 지다니…

-성실한 청년이라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났습니다. 청년들의 희생이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이 나라는 안전한 나라가 됩니까?

/김인경인턴기자 izzy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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